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나라의 학문을 크게 일으킨 대학자나 나라를 위해 충절을 다하고 절개를 지키다 돌아가신 어른의 영정(초상화)이나 위패(모시는 신주의 이름을 쓴 나무판)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선비들이나 학생들이 모여서 학문을 강론(講論)하는 일종의 교육기관이 세워졌다. 그리하여 동방의 대학자이신 '문헌공' 선조님을 모신 서원과 영당도 나라 안에 여러군데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서원은 북한 땅인 황해도 해주에 문헌서원이 있다. 그러나 북쪽으로 갈 수 없는 남한의 후손들이 뜻을 모아 오산에 문헌서원을 다시 세웠으며, 元植 前대종회장(32세손 좌랑공파)이 서원건립추진위원장을 겸임하고 3년여에 걸쳐 역사(役事)를 마무리 하였다.
오산의 문헌서원은 해주최씨의 총 본산이 되었으며, 서원에는 시조 온 선조님의 영단이 있고, 해동공자 문헌공(文憲公) 충(冲)선조님과 두 아드님인 문화공(文和公) 유선(惟善), 섭상서령공 유길(惟吉) 선조님의 영정을 봉안하고, 향사는 전국 종친이 운집한 가운데 매년 4월 넷째 토요일 9시부터 시조님 영단제와 11시부터 문헌공과 두아드님의 향사가 진행되며, 이어서 해주최씨대종회의 정기총회를 개최한다.
황해도(黃海道) 해주(海州) 서쪽 약6km 지점 신광사(神光寺) 계곡 위에 있는 서원(書院)으로 문헌공(文憲公) 충(冲)과 문화공(文和公) 유선(惟善) 두 분을 봉향하고 있다. 조선(朝鮮) 명종(明宗) 4년에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이 안절사(按折使)로서 서해(西海) 감영에 부임하여 3일만에 문헌공(文憲公:충) 사당(祠堂)을 찾아 제사를 올렸으며 이듬 해인 명종 5년(1550)에 해주성(海州城) 소서문(小西門) 밖으로 옮기고 편액(片額)과 땅, 노비 등을 하사받아 훗날 문헌서원(文憲書院)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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